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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3

호프 · 나홍진

뻔한 이야기를 할 바엔 이말년 시리즈가 되자

호프 (2026) - 왓챠피디아지원해 줄 인력들은 산불을 끄러 갔고, 이젠 통신도 두절됐다. 호포 출장소의 ‘범석’과 ‘성애’는 노인들뿐인 마을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놈을 쫓아 산으로 향했던 청년들과 ‘성기’는 되려 놈들의 사냥감이 되어 버린다. 무지가 빚어낸 불행의 씨앗은 입장의 차이를 거쳐 온 우주의 비극이 되고야 만다.왓챠피디아

<스포 주의> 논란의 그 영화, 나홍진 감독의 호프를 보았다. 이동진 평론가가 호프에 4점을 준 이후로 한참 설왕설래가 일어나더니 기어이 뉴스에까지 등장하던 차였다. 이걸 보고 호프는 꼭 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 한 편 보시고 나서 왜 그렇게까지 조롱을 하거나 화를 내시는 걸까요

이동진 평론가 블로그 https://blog.naver.com/lifeisntcool/224352523012

먼저 호프를 본 친구는 카메라 구도나 촬영 기법에 대해서 극찬했다. 나는 영알못인지라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잘 모르겠으나, 백주대낮의 호포항에서 외계인과 쫓고 쫓기는 처음 1시간가량의 시퀀스 배경들은 좋았다. 하나도 어둡지 않은 밖과 무너지고 파괴된 건물 안의 어두운 대비가 쫀쫀했고, 오래된 어촌마을의 소품들을 밝은 대낮에 늘어놓아 대놓고 눈앞에 들이미는 것만으로 만들어지는 을씨년스러움이 기이했다. 지저분한 유리창 너머 범석(황정민)이 외계인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외계인이 있는 안쪽에서 찍어낸 장면이 그 기괴함과 안팎의 대비를 잘 보여줘서 기억에 남는다.

근데 몰입을 방해하고 긴장감을 탁 끊어버리는 요소들을 자꾸 여기저기에 쑤셔 넣는다. 당연히 감독의 의도였겠지만, 잘 모르는 미지의 존재를 추격하고 대면하기까지 긴장하며 몰입하는, 말하자면 ‘숨 막히는’ 그런 순간을 나는 기대하는데 자꾸만 짜게 식게 만든다. 중간에 만난 노인이랑 들어갈지 말지 대화하는 장면이나, 마을 주민을 오인 사격하고서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긴장감을 팍팍 끊어놓는다. 이 짜침의 하이라이트는 성애(주호연)와 차를 타고 외계인을 추격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유탄 발사기 가지고 뭐라 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건 괜찮았다. 뭐 어디 있었을 수도 있지. 근데 차를 타고 외계인을 추격하면서 성애가 “사람을 얼마나 죽인 거에요~!!! 괴물이라도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요~!!!” 하고 호방하게 외치는데 진짜 짜증 났다. 난 이미 거기에서 팍 식어버렸기 때문에 외계인이 울든 말든, 차에 치여서 죽든 말든 정색하면서 봤다.

첫 시퀀스가 끝나고부터는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공들여 구성된 배경과 액션 신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개짜치는 장면의 교차가 기가 막힌다. 무려 우주선을 타고 온 외계인들이 돌창 돌도끼를 던진다던지, 거구의 외계인이 볼트액션 총알 한 방에 공중에서 180도 턴을 하며 쓰러진다던지… 당최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말을 타고 화려하게 성기를 구하는 장면 이후에 상반신 없이 하반신만 남아 말을 타는 모습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지는 걸 보면 분명 엄청난데 그래놓고 성기가 외계인한테 칼들고 “마짱떠 쒸파~!!!” 한다.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도대체. 도저히 집중이 안 되고 슬슬 졸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지막 시퀀스에 가까이 도달하면서 나에게 깨달음이 왔다. 내가 멋대로 뭘 기대하고 있었던 거지? 이 영화 그리고 주인공들은 내 기대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들은 사건을 앞으로 밀면서 자기들 맘대로 행동하는 데만 최선을 다한다. 그 과정에서 관객인 내가 혹여나 내 맘대로 몰입할까 봐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보여주며 나를 뒤흔든다. 예측불허의 대난장판. 이야기의 동력이 엄청나다. 그냥 통째로 앞으로 굴러간다. 영화가 나에게 알빠노 하는 기분이 들며 너무나도 유쾌하고 재미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성기가 말을 타다가 경찰차로 넘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관에서 폭소했다. 왜 넘어오라는 건지도 모르겠고 다리 한쪽 걸치고 난리난리 하는데 너무 웃겼다. 마지막이 하이라이트인데 뜬금없이 차에서 떨어지는 성기와, 방금 전까지 사랑해 오빠를 외치며 발광하던 성애가 피묻은 얼굴에 오묘한 표정을 띠며 올려다보는 장면이 너무 재밌었다. 나한테는 이게 이 영화의 스토리적 정체성이다. 이해할 수 없이 앞으로 굴러가는 이야기. 이말년 시리즈 실사판. 이제 외계인 함선이 떨어지고 갑자기 외계인 말이 자막이 달리고 하나도 안 중요하다. 성기는 왜 죽지 않나요? 유탄 발사기는 어디서 나왔나요? 이 마을 사람들은 총을 왜 이렇게 잘 쏘나요? 하나도 안 중요하다. 왜 이말년 시리즈 보면서 현실감이 떨어진다고 뭐라 해?

호프는 3부작이라고 한다. 지금의 논란을 딛고 속편이 제작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게다가 나홍진 감독의 전작은 10년 전이었다고 한다.) 호프2가 나온다면 반드시 보러 갈 생각이다. 이말년 시리즈와 비슷한 맛을 담아내려 노력하는 작품은 많았지만 이말년 시리즈만 한 게 없다. 호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들었다. 미친 듯이 구르기 시작한 이야기와 그걸 솜씨 좋게 담아내는 영화, 흔한 영화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