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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4

대부 3부작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폭력의 속성에 대해

대부 (1972) - 왓챠피디아이탈리아 시칠리아, 꼴레오네 출신의 비토. 혈혈단신으로 뉴욕에 오게 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면서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대부(代父)’가 된다. 냉철한 판단력과 카리스마로 뉴욕 5대 마피아 중 꼴레오네 家의 보스이자 정계까지 장악하는 거물이 된다. 하지만 상대 조직 타탈리아 패밀리가 제안한 마약 사업을 거절하게 되면서 조직 간의 피의 전쟁이 시작된다. 타탈리아 패밀리는 꼴레오네 가족의 사업과 관계없이 엘리트 코스를 밟아오던 셋째 아들 마이클을 도발하게 되고 마이클은 가족을 지키기 위한 결단을 내리게 된다.왓챠피디아 대부 2 (1974) - 왓챠피디아시칠리섬의 꼴레오네 마을. 비토 꼴레오네는 지역 마피아에게 가족을 모두 잃고 뉴욕으로 건너온다. 특유의 사업 수완, 약자에 대해 연민을 지닌 비토 꼴레오네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크고 작은 일들을 해결해주면서 존재감을 키워나가며 모두의 ‘대부(代父)’로 성장한다. 아버지 돈 비토 꼴레오네와 가장 다르면서도 닮은 마이클. 비토 꼴레오네에 이어서 꼴레오네 家의 새로운 후계자로 ‘대부(代父)’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마이클은 가족 사업에서 범죄와 불법적인 흔적을 정리하면서 네바다 라스베이거스로 본거지를 옮기고 카지노 사업에 주력하면서 세력을 확장한다. 하지만 반대 세력들에 의해 암살 타깃이 되고 격동의 시대 속 마이클은 가족의 사업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 피의 전쟁을 결심하게 된다.왓챠피디아 대부 3 (1990) - 왓챠피디아대부 마지막 시리즈. 이젠 늙어버린 돈 마이클 콜레오네. 자신의 마피아 패밀리의 정통성을 이어갈 후계자를 찾는다. 그는 자신의 친아들을 후계자로 지목하나 그는 거절하고, 이혼한 아내마저 아들만은 안 된다고 말린다. 그런 중에 자신의 패밀리 중 하나인 빈센트는 마이클 꼴레오네의 딸인 코니와 사랑에 빠진다. 마이클은 코니와 빈센트의 사랑을 말리지만 딸은 이미 사랑에 눈이 멀었는데...왓챠피디아

대부는 영화사에서 불후의 명작으로 꼽힐 만큼 기념비적인 영화라고 한다. 친구가 대부를 추천해주며 보면 무려 돈을 주겠다고 (그리고 실제로 줬다) 할 정도였다. 많은 요소들이 영화에 숨어있겠지만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아버지인 비토 콜리오네와 아들인 마이클 콜리오네의 대비되는 모습에 매료되어 영화를 보았다. 자연히 영화 속 이들의 삶을 나름대로 반추하며 이 글을 적게 되었다.

비토 콜리오네는 존경이 담긴 우정, 애정이 담긴 가족을 이룩했다. 비록 모든 관계의 기저에 이익을 위한 청부와 폭력이 깔려있었다고 할지라도 그를 중심으로 관계된 이들은 하나의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로서 동작했다. 딸의 결혼식에 찾아온 자니 폰테인을 보며 아이처럼 좋아하고, 자니의 뺨을 때리며 정신 차리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는 패밀리라는 선 밖에서는 무자비한 보스이지만 선 안의 이들에게는 자타공인 대부였다.

한편 마이클 콜리오네는 어떤 면에서는 아버지보다 더 마피아 보스 같다. 영화를 보며 그가 인간적인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할 즈음에 그는 여지없이 서늘한 눈빛으로 비인간적인 선택을 한다. 그런데 단순히 폭력적이라서가 아니라 극도로 침착하고 이성적이어서 비인간적이다. 아버지를 공격한 적을 죽이겠다고 말하면서 분노를 내비치지 않는다. 여인의 아버지에게 딸을 소개해 달라면서 자신의 위치를 누설하면 딸이 아버지를 잃을 것이라고 한다. 죽여버리겠다고 요란하게 소리치는 소니 콜리오네와 다르게 마이클은 폭력을 유난하지 않은 선택지로 다룬다. 마피아 보스로서 그야말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마이클은 방향성이 없다. 아들이 충실하게 실천한 아버지의 격언들과는 다르게 아버지의 가치는 전승되지 못하였고, 아들의 가치는 패밀리의 성공에서 시작하여 권력 유지와 자신의 생존으로 급격하게 하락한다. 방향을 잃은 아버지의 격언은 보신 수단으로 전락한다. 나는 아버지인 비토가 그은 선 안의 사람으로서 영화를 보았다. 그래서 대부1은 폭력적이지만 고풍스러웠고 대부2는 내내 비릿할 뿐이었다. 패밀리의 콘실리에리(전략가)였던 톰을 마이클이 압박하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의견 충돌로 자신을 압박하는 마이클에게 톰은 충성을 바친 나에게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며 말을 건네지만 마이클은 이를 무시하다시피 한다. 톰과 대화하며 오렌지를 뜯어 먹는 마이클의 모습을 보며 나는 입에 비릿한 철맛을 느끼는 듯 불쾌함에 몸서리쳤다. 존경받는 대부는 대를 거쳐 이제 가족을 죽이는 짐승이 되었다.

나는 영화를 보며 마이클이 모든 비극의 원흉이라고 생각했다. 비토가 그어놓은 선이 마이클로 인해 한없이 좁아져 선 안에는 자신만 남게 된 것처럼 보였다. 그로 인해 더 이상 패밀리는 비토가 지켜왔던 패밀리가 아니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의 삶을 다시 곱씹으면서, 비록 마이클이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했지만, 결국 이 비극은 비토로부터 시작된 필연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약으로 대표되는 극단적인 폭력은 비대칭적이다. 비토가 돈 파누치를 죽일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하게, 수많은 패밀리의 존경에도 불구하고 그의 적도 그를 죽일 수 있다. 사람이 가치에 동화하고 변화하는 일에는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지만 폭력의 비대칭성이 마피아들의 시간을 한없이 짧게만 만든다. 그 결과 그들은 어떠한 공동의 가치를 추구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양복을 입고, 격식 있게 인사를 건네고, 정중하게 사업을 논하자고 하지만 테이블에서는 언제나 총소리가 울린다. 그러니 비토가 폭력을 수단으로 선택한 순간에 — 이후에 그가 얼마나 패밀리를 잘 구축하는지와는 무관하게 — 이미 그는 패밀리를 잃었다.

대부 3부작은 마이클의 외로운 죽음으로 끝이 난다. 누군가는 마이클의 외로운 죽음을 손자와 놀다가 죽은 비토의 행복한 죽음과 비교하겠지만, 나에게는 이 둘의 죽음이 길게 드리워진 패밀리의 죽음 위에 나란히 놓여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대부 3부작은 나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하강뿐인 이야기이다. 아버지의 손에서 떨어지기 시작한 패밀리가 이윽고 박살나고, 부서진 조각을 어떻게든 모아보려는 아들의 회한 섞인 모습을 끝으로 하는 이야기. 결국 폭력으로는 아무것도 만들지도 지켜내지도 못했다.